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 8점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선형 옮김/문학동네



*** 본 도서 리뷰는 TISTORY와 알라딘이 제공하는 서평단 리뷰 포스트입니다.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 이라는 데이빗 핀처의 영화가 올 해 아카데미 후보에 오르며
영화의 원작인 스콧 피츠제럴드의 동명소설 또한 그 인기를 더해가는 듯 하다.
지난해 여름에 데이빗 핀처의 신작 소식을 듣고 온, 오프라인 서점들을 다 돌아다녀도
번역된 책을 구할 수가 없었는데, 이제는 많은 출판사에서 번역되어 서점에 진열되어 있는 걸 쉽게 볼 수 있다.
어쨌든, 거장의 잘 알려지지 않은 고전들을 접할 수 있게 된 건 영화가 준 또 다른 기쁨이라 할 수 있다.

영화의 성공과 관심 때문에 '벤자민 버튼의 시간을 거꾸로 간다'라고 이름 지어진
이 책은 <재즈시대 이야기들>이라는 스콧 피츠제럴드의 단편집이라고 할 수 있다.
'재즈 시대'란, 20세기초 1차대전 직후부터 경제 대공황이 일어난 1929년까지의 10 여년 사이의 시기를 말한다.
엄청난 경제호황은 많은 이들이 부를 축적하게 만들었으며
부의 축적은 문화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도 하는지라, 새로운 문화적 현상들이 나타나게 된다.
그런데 흑인들의 아픔을 지닌 음악이라고 알고 있는 '재즈'와 '물질주의 시대'를 합쳐 놓은 듯한
'재즈시대'라는 표현에는 의문이 생긴다.
아마도 급격한 산업화는 백인들에게는 부를 흑인들에게는 착취로 돌아왔을 것이다.
실제로 많은 재즈 뮤지션들이 이 시기를 전후해서 일자리를 얻기 위해 미국 북부로 몰려들게 되면서
재즈가 미국 전역으로 퍼지기 시작했고, 당시 유행하기 시작한 라디오는 이 재즈의 유행을 불러일으킨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 배경에서 이름 붙여진 '재즈시대'는 시대가 지닌 어둠과 아픔보다는
새로운 문화현상들과 '플래퍼'라고 불리는 신여성의 등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스콧 피츠제럴드는 이 '재즈시대'를 한순간에 확 타버린 불꽃처럼 시대를 바라보고 있는 듯 하다.
옮긴이의 표현대로 '경박하고 시니컬하다가 우스꽝스럽고 기발하고, 장난처럼 진행되다 문득 쓸쓸하고 처연해지는 이야기들.' 이것이 스콧 피츠제럴드가 바라보는 '재즈시대'의 모습이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이제 벤자민 버튼이라는 오묘한 이름은 '브래드 피트'라는 이름 위에 덧붙여진 닉네임같이 느껴질 정도로 평범하게 들리게 되었다.
그런데 영화와 원작과는 상당한 내용상의 차이가 있다.
마크 트웨인이란 사람의 '슬프게도 인생은 최고의 대목이 제일 처음 오고 최악의 대목이 맨 끝에 온다'라는 말에 영감을 받아서 그 반대의 삶을 살게 되는 벤자민이라는 인물을 만들어내었다.
하지만 인생에서 최고의 행복은 관계에서 온다는 것을 증명하듯, 벤자민의 일생은 주변의 따가운 시선에서 시작해서 외로움 속에 끝을 맺는다.
평생을 남들과 다르게 산다는 것, 그것도 시간을 역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타인들과의 거리가 멀면 멀수록 (외관상 나이차가 심할수록)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되고 만다.
개인적으로는 영화가 원작의 모티브만 따서 영화로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데, 책도 나름의 재미가 있다.
특히 다름에 대한 벤자민의 주변의 반응은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들고
인생을 거꾸로 살아가는 이를 통해, 삶에서의 가장 기본적인 가치가 무엇인가, 무엇을 향해 살아가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인생의 맨끝이 최악의 대목이 아니라 최고의 순간까지는 아니지만 만족스러운 끝을 맺을 수 있게 살아가야지 않을까...

낙타엉덩이
재즈 시대 이야기들 중에서 인상적인 단편 중 하나가 바로 낙타 엉덩이다.
가면 무도회에 낙타 모습을 하고 참가한 주인공과 주인공 뒤에 낙타 엉덩이로 들어가 있는 한 사람을 통해서 앞만 보고 살아가는, 위로 올라가려고 하는 재즈시대의 모습을 풍자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느끼게 하는 결말은 더욱 인상적이다.
저자가 이 책에 실린 단편소설 중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다 라고 작가의 말에 명시되어 있는데,
가장 괜찮은 단편 중 하나로 느껴져서 좀 아이러니 하다.

도자기와 분홍
남자가 벽을 사이로 자신의 애인과 사랑의 이야기를 속삭인다.
허나, 벽 건너에서 대답하는 이는 그의 애인이 아니라 애인의 동생이었던 것이다.
사랑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내가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람인가, 아니면 사랑이라는 분위기 인가...
혹은 그 사람의 외피인가... 뭐 이런것들을 생각하게 하는 단편이다.
거기에 보고 있는 것들과 듣고 있는 것들이 원래 그대로의 모습인지 변형된 모습인지 헷갈리게 만든다.
과연 내가 보는 너는 '너'라는 사람이냐, 아니면 '너'로 이미지화 된 다른 사람이냐...
피츠제럴드의 글들을 읽다보면 이런식의 느낌에 자주 빠지게 된다.

리츠칼튼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
여기서도 나의 현실이 혹시나 꿈은 아닌지 하는 착각을 일으키면서
다른 단편들과 비슷한 모호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보석보다 유리구슬이 더 진귀해질 정도로 엄청난 부가 쌓여있는 그곳은 주인공과 저자의
호사스러움에 대한 갈망이 강하게 담겨있다.
하지만 이 또한 다 부질없다는 것을 나타내듯, 한순간의 꿈처럼 신기루와 같이 사라져버린다.
허황된 꿈은 처절한 현실 못지 않게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 적갈색 머리카락 마녀!
<행복의 잔해>와 함께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다.
미모의 여인에 대한 주인공 캐롤라인의 환상은 그녀을 처음 본 순간부터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그를 따라 다닌다. 그리고 그 환상은 부질없기도 하다.
이 글을 읽다보면 미모의 여인에 대한 환상이 단지 외모에 대한 환상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새로움과 도전에 대한 갈망에서 시작되는 환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때문에 캐롤라인은 그 새로움과 도전에 대한 환상을 끝까지 버리지 못한 채
인생의 어느 순간, 우연히 마주치는 적갈색 머리카락의 미모의 마녀처럼 그런 환상이 다가오게 된다.
부질없는 꿈인지, 버릴수 없는 미련인지는 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시도해보지 않고서는 끝까지 따라다닐 문제이기도 하다.

행복의 잔해
이 단편은 재즈시대 이야기들의 다른 단편들과는 조금 색다르다.
책의 대부분은 '환상'을 다루고 있는 반면, 이 작품은 혼수상태에 이른 한 남자와
그곁을 지키는 그의 부인과 친구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보통의 경우, 이런 상황에서 둘은 사랑에 빠지는 것으로 글이 흘러갈텐데
저자는 역으로 둘의 관계를 더이상 발전시키지 않는다.
그렇다고 둘의 감정 교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둘의 모습을 통해 순수함에 대한 갈망을 나타내고 싶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외에도 젤리빈, 메이데이, 치프사이드의 타르퀴니우스, Mr.이키, 산골소녀 제미나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대부분의 내용이 '환상'에 대한 내용이다.
자신이 처한 환경 혹은 자신의 갈망 등에서 출발하는 그러한 '환상'은 참으로 덧없다.
책은 이 지점을 재즈시대의 삶의 풍경을 통해 담아내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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