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트릭트 9 [District 9]
ⓒ 한국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영화㈜
디스트릭트 9 [District 9]
감독 닐 브롬캠프
출연 샬토 코플리, 제이슨 코프, 나탈리 볼트, 데이빗 제임스, 실바니 스트라이크 등
2009. 미국.
@ CGV
꽤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올해의 영화’라고 칭송받는 영화 <디스트릭트 9>은 매년 등장하는 헐리우드발 수편의 SF 블록버스터 영화와는 질적으로 다른 영화다. 미국 혹은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다국적 연합군이 지구를 구해내는 스토리도 아니고, 뻔하디 뻔한 선과 악의 대결 속에 영웅이 등장하며 선이 승리한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영화는 SF라는 형식을 띠고 있지만 지극히 현실적이며 육체적 생명, 사회적 생명을 보존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성과 그 본성의 밑바닥에 숨어있는 탐욕적인 심리가 표현되고 있다. 거기에 이 사회의 권력의 시스템과 거기에 도전하는 것이 얼마나 처절한 과정을 거치게 되는지가 비유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영화를 보고 나면 두가지 비슷한 현실을 목도하게 된다. 하나는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인종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용산참사를 비롯한 철거민들의 현실이 바로 그것이다.
외계인들이 살아가고 있는 제9구역의 모습은 현실의 이주노동자들의 삶의 현장과 닮아 있다. 자신들의 필요 혹은 다른 이유 등으로 인해 거주를 허용하고 있지만, 그들과 함께 공유를 허용할 수 있는 부분은 전부가 아니다. 그로 인해 생겨나는 수많은 차별과 억압은 힘을 가지고 있는 외계인들에게는 인간사회로의 침입을, 그렇지 못한 현실의 이주노동자들에게는 사회적 고립이라는 결과를 낳고야 만다. 그리고 비슷한 현실 속에서 두 집단은 모두 그 사회의 구성원들로부터 추방을 강요당해야만 한다.
최근 읽고 있는 책 <세종, 실록 밖으로 행차하다>를 보면 세종시대에 주변국에서 조선으로 이주해온 사람들이 최고에 달하고 있다는 사료를 만나게 된다. 거기에는 살기 어려운 백성들이 다른 환경이라는 핸디캡을 안고서라도 살아보려고 강과 바다를 건너는 경우도 있지만, 타국의 지배계급 중에서도 이주해온 이들도 많았다고 한다. 이는 세종시대에 철학과도 맞물려 있는 지점인데 (그렇다고 세종과 그 시대를 추앙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다만) 조선으로 이주해온 외국인들을 배려해주는 사회적 시스템이 어느때보다 괜찮았다는 것의 반증일 것이다.
봉건시대보다 더 폐쇄적인 사회의 모습을 우리의 현실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외국인과 걸어가는 여성을 향한 비아냥의 시선을 보내는 한국인들의 모습이나, 인종차별금지법에 대한 의견을 묻는 설문에 한국인에 대한 역차별에 대한 여론이 형성되고 있는 것은 이런 폐쇄성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 한국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영화㈜
영화는, 공존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사실 외계인들이라고 해서 인간들이 사는 지구가 마음에 들리는 없다. 다만, 돌아갈 길을 잃어버린 그들은 마치 핍박의 현실 속에서도 이제 돌아갈 수 없는 처지가 되어버린 이 땅의 이주노동자들처럼 사회적 고립 속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외계인의 범죄로 인해 다른 곳으로 강제이주 시키기 위한 정책을 세우는데 현실에서의 강제추방도 이와 매우 닮아 있고, 외계인의 유동성물질로 인해 반은 외계인의 모습을 반은 지구인의 모습을 띠게 된 비커스를 향해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는 사회적 시선은 혼혈인에 대한 사회적 시선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너무도 보편적인 원리가 현실에서의 적용이 왜 이렇게 어려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인가. 이주노동자들에게 ‘불법’의 딱지를 계속 붙여놓음으로 해서 이득을 보고 있는 이들이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심은 어쩌면 현실일수도 있을 것이다.
외계인에 대한 강제이주를 시행하는 MNU를 보면서 용산철거민들의 아픔을 되새겨보게 된다. 영화에서처럼 자신들이 불법을 행하고 있으면서 철거민들에게 범죄자라는 꼬투리를 잡고 밀어붙이는 모습은 영화가 아닌 오늘의 우리 현실에서 그대로 보여지고 있는 모습이라는 것이 정말 안타까운 지점이다. 검찰 구형으로 8년이나 받아야 할 만큼 그들을 중죄인 취급하는 사법기관에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는 듯 하다.
더구나 영화에서 층위가 다른 언어로 그나마 소통이라도 하고 있는 지구인과 외계인 사이의 대화는 같은 언어를 쓰면서도 대화가 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과 오버랩되면서 그렇지 않아도 먹먹한 현실에 더 큰 생채기를 남긴다.
현실 속 이야기를 구구절절 늘어놓았지만, 영화에서 보여지는 모습은 비유적 현실이기 때문에 사회비판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라고 하기는 어렵다. SF라는 장르가 지니는 새로운 판타지의 재미와 함께 이런 문제를 비유적으로 담고 있는 모습이 더 흥미롭게 느껴진다.
특히 영화에서 주인공 비커스의 심리가 도드라지는데 이 부분이 참 인상적이다. 군인이 아니지만 외계인들을 10구역으로 강제이주시켜야 하는 전담반의 팀장을 맡게 된 그는 작전도중 외계인 자신들을 자신들의 별로 돌아가게 만들어줄 유동성 물질에 노출되면서 외계인의 유전자를 흡수하게 된다. 그렇게 반은 지구인 반은 외계인의 모습을 가진 비커스는 자신을 향한 세상의 시선과 맞서 싸우지만, 그것은 정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완전한 지구인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욕망 때문인 것이다. 때문에 외계인과의 연대에 대한 의지도 신념도 없는 그는 유동성물질을 찾아내기 위해서 외계인과 함께 하지만 자신이 살아남기 위한 것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뉴스 혹은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차용한 듯 보이는 영화의 편집은 마치 팩트와 같은 느낌을 충분히 잘 살려주고 있고 이 또한 영화의 매력이다. 때리고 부수고, 영웅이 등장하고 그래서 정의가 승리한다는 1차원적 흥미를 느끼기위해 극장을 찾는다면 실망스럽겠지만, 이 영화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훨씬 더 매력적인 영화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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