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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 [Une Vie Toute Neuve]

ⓒ 나우필름 / 글로리아필름





여행자 [Une Vie Toute Neuve]
감독 우니 르콩트
출연 김새론, 박도연, 고아성, 설경구, 문성근, 오만석, 박명신 등
제작 나우필름, 글로리아필름
2009. 한국, 프랑스
@ 씨네코드 선재




당신은 모르실거야 얼마나 사랑하는지
세월이 흘러가면은 그때서 뉘우칠거야
마음이 서글플때나 초라해 보일때에는
이름을 불러주세요 나 여기 서있을게요
혜은이씨의 ‘당신은 모르실거야’라는 노래가 이토록 슬픈 노래인지 몰랐다. 9살짜리 꼬마아이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소리를 들으면서 눈물이 맺히고야 만다. 이동진 기자의 ‘이 영화를 보고 눈물이 흐르지 않는다면 병원에 가보라’라는 짧은 영화 평에 눈물이 흐르는 것을 위안삼는다. 주인공 진희는 그렇게 보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어버린다.

아홉 살에 프랑스로 입양된 우니 르콩트 감독이 입양되기 전 1년정도 머물렀던 천주교 수녀들이 운영하는 고아원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영화가 만들어졌다. 자신의 경험이 적극 반영되어 있는 영화는 보는 이들의 감정에 강한 어필을 해온다. 헌데, 이 영화는 사람을 들었다 놓는 식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매우 절제된 장면들이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하는 것이 매력적이다.
고아원에 모여 있는 아이들 중 어디 사연없는 이들이 있겠는가. 허나 영화는 절대 그 사연들을 쥐어짜지 않는다. 되려, 아홉 살 열 살 된 아이들이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하는 모습에 가슴이 쓰려오는 것이다.
이들은 ‘여행자’라는 제목처럼 보통의 아이들보다 조금 일찍 자신의 삶에 새로운 여행을 시작한다. 어떤 아이들은 머나먼 이국으로 그 여행을 떠날 수도 있고, 어떤 아이들은 그냥 고아원에 남아서 팍팍한 현실에의 여정을 만들어갈 수도 있다. 다만, 성인이라는 이름이 붙기 전까지 친부모가족에 의한 돌봄 속에서 삶의 여행을 시작할 준비기간을 갖는 대부분의 아이들보다 일찍 자신의 삶을 시작해야만 하는 상황인 것이다.

영화는 그런 이들에게 동정의 시선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진솔한 삶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고아원에서 살아가야 할지 아니면 더 좋은 환경이라 믿으며 다른 곳으로 입양되어야 할 지 모를 상황에 놓인 아이들을 동정어린 시선으로 관조하는 것이 아닌 그들 삶 자체를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낸 연출은 어쩌면 감독의 직접경험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해본다.
주인공 진희는 자신이 고아원에 들어온 상황 자체를 부정한다. 음식을 거부하는 것은 물론이고 고아원을 나가겠다며 높은 담장을 오르며 시위해보지만, 그가 돌아갈 수 있는 곳은 현실에 없다. 진희의 분노와 원망이 가라앉는 과정은 고아원에서 친구이자 언니인 숙희와 교감을 하면서부터다. 그렇게 진희는 고아원에서의 생활에 적응해간다.
진희 외에도 숙희와 예신을 통해서도 그들의 삶에 대한 애착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입양되기 위해 자신의 생리사실도 숨기고, 잘 되지 않는 영어도 애써가며 공부하는 숙희의 모습은 진희로 하여금 삶의 현실을 인정하고 그 삶을 받아들이게 만들어준다. 예신은 장애로 인해 고아원에서 성장했는데, 자신을 데려가려는 이들이 자신을 식모로 데려간다는 뻔한 사실을 자각하고 있기도 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고아원에 물건을 가져다 주는 남자를 좋아하는 이유로 인해 그곳을 나가기를 두려워하지만 결국 예신 역시 현실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이들의 현실은 어설픈 희망과 장밋빛 미래 따위에 시간을 허비할 여지가 없다. 다만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현실이라면 그들은 새로운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해야만 하고, 그를 위해 자신을 맞춰나간다. 동정이 아닌 그 현실을 담담하게 담아내는 시선이 그래서 더 폐부를 찌르는 이유다.


ⓒ 나우필름 / 글로리아필름



숙희와 진희는 다리를 다친 새 한 마리를 정성을 다해 보살핀다. 이 새의 운명이 마치 자신들의 운명이라도 되는 것처럼 둘은 정성을 다하고, 죽어가는 새의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자신들의 삶의 질척거림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물론 9-10세의 아이의 감정만큼 떠올리겠지만, 진희가 새의 무덤을 파헤치는 장면은 새의 죽음에 자신의 운명을 엿보는 듯한 감정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들의 삶의 애착은 다양한 감정과 뒤섞여 여러가지 형태로 표출되는데, 특히 주인공 진희의 감정변화를 정말 자연스럽게 연기해내고 있는 김새론이라는 배우에 대해 주목하게 만든다. 영화의 서사를 떠나 김새론이라는 10살짜리 배우의 연기 하나만으로도 영화속으로 빨려든다. 그에게서 나타나는 천진한 눈빛, 표독스러움, 애절함, 연민, 그리움, 새로운 희망 등등의 감정이 눈과 표정으로 통해 그대로 드러날 때,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그 감정들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래저래 <나무없는 산>이라는 영화와 비교가 될 만한 영화다. 두 영화 모두 올해의 영화로 손꼽을 수 있을 만큼 잘 만들어진 영화임에 틀림없다. <나무없는 산>이 다큐멘터리와 비슷한 형식을 유지하면서 홀로 남겨진 두 아이의 시선을 좇아가고 있다면, <여행자>는 진희라는 주인공의 삶 속으로 관객들을 끌어들이는 극형식을 유지하고 있다.
두 영화 모두 이러저런 이유로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아이들의 삶을 그려내고 있고, 그들을 향한 동정어린 시선이 아니라, 어린 나이지만 삶을 대하는 그들의 방식을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상처는 극복하는게 아니라 끌어안는 것’이라는 우니 르콩트 감독의 멘트는 영화 전반에 깔린 기조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상처치유방식을 우리는 배워야 한다. <여행자>에서 주인공 진희는 자신이 버려졌다는 현실을 인식하기가 쉽지 않지만, 그 현실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 상처를 감싸안을 줄 안다. 고아원 보모 앞에서 ‘당신은 모르실거야’라는 노래를 부르는 진희의 모습은 어떤 어른의 모습에서도 느낄 수 없는 매우 성숙된 표정으로 느껴지고, 그 노래를 들으면서 흘리는 보모의 눈물과 겹쳐지면서 짠한 감정을 만들어낸다.
나이가 감정의 성숙을 가늠짓는 잣대가 결코 아니다. 아직도 자신의 삶으로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수많은 성인들에 비하면, 오히려 자신의 상처를 끌어안고 결국 웃는! 모습으로 이국으로 떠나는 진희의 모습은 새로운 삶의 여행을 시작하는 성숙됨으로 다가온다.
그의 마지막 웃음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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