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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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의 게임
감독 최위안
원작 오정희 ‘저녁의 게임’, ‘동경’
출연 하희경, 정재진, 안찬우, 윤배영, 이중열 등
제작 리얼곤시네마또
2008. 한국.
@ 스폰지하우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힘겨워보이는 전철의 덜컹거림 안으로 그 전철보다 더 힘든 삶의 무게를 짊어진듯한 성재라는 여인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내 전철을 나와 집으로 가기 위해 자전거에 올라탄 그녀, 하늘거리는 하얀색 원피스와 자전거의 어울림이 매우 낭만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모래바람 휘날리는 공사현장 사이로 먼지를 날리며 달려가는 그녀의 모습은 매우 부조화스럽게 느껴진다.
그녀의 자전거 뒤로 대형트럭 한 대가 다가오고, 자전거 때문에 앞으로 나갈 수 없는 트럭운전사는 차를 세우고 사각팬티 차림으로 내린 다음 성재의 뺨을 후려갈긴다. 이렇게 시작되는 영화의 첫 장면은 <저녁의 게임>이라는 영화의 전반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낭만을 꿈꾸는 소녀와 같은 감성의 성재와 모래바람 날리는 무미건조하고 척박한 그녀의 현실의 부조화, 그리고 그녀에게 닥쳐오는 ‘폭력’이라는 공포는 영화의 전반을 차지하는 내용이 된다.
영화의 첫 부분의 암시처럼 영화는, 폭력의 트라우마를 이야기 하고 있는 영화라 할 수 있다. 십수년전 어머니를 향한 아버지의 계속되는 폭력은 어린 성재에게는 고통의 나날이었고, 그러던 중 자신에게로 향한 폭력으로 인해 귀를 멀어버린 성재는 그 때의 고통의 연속선상에서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아버지를 남겨두고 홀로 떠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폭력의 피해자가 쉽사리 도피와 같은 형태의 방법을 모색할 수 없는 것처럼 성재도 여전히 아버지와 머물고 있다. 이제 치매에 걸려 오락가락 하고, 자신의 건강과 성욕밖에 관심이 없는 성재의 아버지는 성재를 통해 대부분의 것들을 해결한다. 먹는것부터 목욕, 성욕의 해결 심지어 밤에 고스톱 치는 것까지 십수년전의 폭력이 이제는 저런 형태로 진행되는가 싶을 정도로 성재에게 의존한다.
ⓒ 리얼곤시네마또
영화 속 재개발 지역의 철거촌의 현실보다 더 쓰러져버릴 듯한 일상을 살아내고 있는 성재는 탈옥수를 상상하며 자위를 할 정도로 현실에서 벗어나고픈 욕망이 크다. 하지만 상상 속 현실에서마저 판타지 속 공간을 부유할 수 밖에 없는 그녀는 지금의 현실을 벗어날 수 없다.
시간이 지나면서 부녀지간의 권력관계는 역전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절대 그렇지 않다. 폭력이 습성화된다고 했던가, 아버지에 의한 폭력의 기억은 성재로 하여금 수치심을 감내해가면서까지 아버지의 욕망을 해결해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영화에서 보이는 칼과 개구리 등에 대한 클로즈업된 화면은 성재의 심경을 느낄 수 있는 장면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바람만 불어도 살겠다'라는 영화의 홍보카피멘트는 성재의 심경이 감각적으로 표현된 문구로 느껴지는데, 그만큼 성재에게는 습성화된 폭력에 노출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습성화된 폭력사이에서 그녀의 자위와 판타지적인 꿈은 그녀의 유일한 일상의 탈출구 밖에 되지 않는다. 다음 날이 되면 다시 그녀는 귀가 안들리는 이유로 뒤에 오는 트럭운전사에 심기를 불편하게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며, 그런 트럭운전사에게 뺨을 후려맞을 것이다. 그리고 집에 도착해서 아버지의 욕망 해결의 도구로 또 하루를 살아가게 될 것이다.
폭력, 가정폭력에 대한 주제로 된 영화는 종종 만날 수 있다. 특히 올 초 개봉한 <똥파리>라는 영화를 쉽게 기억해낼 수 있는데, <똥파리>가 폭력의 전염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반면, <저녁의 게임>은 폭력을 당하는 이의 입장에서 폭력이 습성화되고 있다는 지점을 지적하고 있는 듯 하다.
덧. 영화에 나오는 음악이 참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원래 이 영화의 제목으로 명명되었던 ‘자끌린의 눈물’이라는 오펜바흐의 첼로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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