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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행복합니다

ⓒ 블루스톰(주)





나는 행복합니다
감독 윤종찬
출연 현빈, 이보영, 박노식, 박효주, 김성민, 박영서, 정재진, 손영순, 최종률 등
제작 블루스톰
2008. 한국.
@ 시네마 상상마당




<소름>이라는 꽤 오랜시간이 흘렀어도 쉽게 잊혀지지 않는 이 영화는, 지금은 누구보다도 유명해진 김명민과 장진영이라는 배우에게 관심을 갖게 만들어준 영화였다. 그리고 그 두 배우 뿐 아니라 윤종찬 감독에 대한 관심도는 더 높아져서 개인적으로는 다음 작품들이 기다려지는 감독이기도 하다. 소름 이후 4년만에 <청연>이라는 영화가 스크린에 걸렸을 때에도 ‘주인공의 친일’로 여론이 별로 좋지 않았던 것이 안타까울 정도로 영화는 꽤 만족스러웠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4년만에 (작품은 지난해에 나왔으니 3년만이겠지만, 내가 영화를 본건 4년만에) <나는 행복합니다>라는 윤종찬 감독의 영화를 봤다. 좀 더 많은 영화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몇 안되는 감독인데, 띄엄띄엄 나오는 영화가 그 시간만큼의 완성도가 더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아본다.

포스터만 보면 <내사랑 내곁에>와 같은 느낌의 신파 멜로영화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실제로 둘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지닌 눈빛조차 교환되지 않는 사이다. 그런데 이 둘의 관계가 아무사이도 아니냐하면 그도 그렇지가 않아서, 이 둘의 관계는 영화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아버지의 죽음, 어머니의 치매, 형의 도박중독과 자살, 그리고 빚쟁이들의 독촉은 만수로 하여금 삶의 대한 마지막 애착을 서서히 놓아버리게 만든다. 심지어 세상 어디에도 비빌언덕이 없는 만수에게 여자친구의 이별통보는 그를 현실로부터 도피하게 만들어버렸다.
유일한 피붙이 아버지의 암투병으로 인해 늘어가는 건 빚과 시름밖에 없는 수경역시 만수 못지않게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힘에 부친다. 머리는 푸석거리고 입술은 부르튼 채 멍하니 병원에서 근무하는 일이 잦아지지만, 그나마 아직 숨이 붙어있는 아버지 때문에 버틸 수 있다.
이렇게 기댈 곳 없는 둘은 과대망상증 환자와 담당 간호사라는 관계로 첫만남이 시작된다.

영화는 섣불리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치유한다거나, 극한에 처한 둘의 사랑이라는 신파조로 영화를 끌고 가지 않는다. 이 지점이 영화의 매력이라고 생각되는 지점인데, 단지 각자의 고통과 그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특히 만수와 수경은 몇 번의 교감을 갖게 되긴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그 교감이 급격한 감정의 변화를 만들어내지도 않는다.
비슷해보이는 처지와 조건이라는 건 둘을 보는 관객의 입장에서 느끼는 문제일 것이고, 만수와 수경은 각자의 현실만으로도 힘겨운 것이다. 다만, 자신을 괴롭히는 의사에게 복수해주겠다는 만수의 말이나 과대망상증인 만수의 가짜돈으로도 피자를 주문해주는 수경의 모습에서 서로를 외면하지 않는다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어서 수경은 만수의 괴로움에 곧 괜찮아질거라고 위로를 건네지만 만수는 뭐가 괜찮아진다는 거냐며 악다구니를 퍼부어낸다. 또한 정신이 돌아온 만수는 수경을 기억하지 못하면서 둘은 그렇게 자신의 삶으로 돌아간다. 아니, 처음부터 각자의 삶을 살고 있었고 매우 작은 부분을 교감하고 있던 것 뿐이다.
가슴시린 사랑이야기를 기대했다면 영화는 감정의 굴곡도 없는 영화로 느껴질 수 있지만, 마치 일상의 한 부분을 오려내어 보여주는 듯한 시선은 영화의 새로운 매력을 충분히 느끼게 해준다. 사실, 그들이 처한 상황에서 상대방을 생각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적어도 교감하고 사랑 비슷한 감정이라도 느끼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생각하는 비중이 커야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만수의 이야기와 수경의 이야기를 교차하는 식으로 편집된 이 영화는 각각의 현실과 그 현실들이 마주쳤을 때의 모습들을 잘 느낄 수 있다.


ⓒ 블루스톰(주)



영화에서 둘이 처한 상황은 하나만으로도 감당하기 힘든 일들이 몇 개씩 연달아 겹쳐지는 상황들이다. 한 명은 그 현실을 도피했고, 다른 하나는 그 현실에 맞섰지만 결과는 둘 모두에게 별 차이를 주지 못한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도 이들이 별로 나아진게 없는 현실 때문에 ‘나는 행복하다’는 제목은 지독한 반어법으로 들리지만, "두 사람이 포기하지 않고 존재하는 것 자체가 다시 시작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는 의미다."라는 감독의 인터뷰기사처럼 존재 자체를 모든 것의 출발점으로 보고 행복이라는 가치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해보게 만든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행복하다거나, 그런 상황에 처해 있을때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영화의 주인공들을 보면서 저들을 불행하다고 느끼는지 행복하다고 느끼는지를 되물어보는 듯한, 그래서 과연 지극히 주관적인 가치인 행복이라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갖게 만든다. 그들이 불행했다고, 앞으로 불행할거라 쉽게 말할 수 없는 이유다.

개인적으로는 꽤 만족스러운 영화였고, 윤종찬 감독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더더욱 생겨나는 영화였다. 헌데 이 영화는 어쩌면 현빈과 이보영을 위한 영화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초점을 잃은 듯한 멍한 눈빛에서부터 정신줄 놓은 표정과 연기, 비참한 현실속에서 절망하는 모습 등의 현빈과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묻어있는 듯한 표정과 아버지의 고통을 옆에서 감당해야 하는 딸로서의 아픔 등의 이보영의 연기는 영화에서 단연코 돋보이는 지점이다.
어쩌면 둘의 필모그래피에서 전환적인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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