公無渡河 公竟渡河 公墮河死 當柰公何
님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 님이 결국 물을 건너다 물에 빠져 죽으니 이 일을 어찌할꼬
ㅡ 공무도하가 에서
강을 건너는 것은 죽음에 닿는 길이라는 걸 의미하는 공무도하가는 백수광부가 강을 건너려다 죽었고, 그에 대한 탄식을 그의 부인이 애타게 노래하고 있다. 그 부인에게 강이라는 것은 죽음과 삶을 나누고 있는 경계와도 같고, 현실의 우리는 그 경계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훈 작가님의 신작소설 <공무도하>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거닐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특유의 관조적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소설이다. 작가의 전직이었던 기자로서의 경험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듯한 이 소설에서 문정수라는 주인공 역시 사회부 기자이다. 추려진 기사로 매일 죽음을 읽고 보는 우리지만, 그에게는 쓰고 말하는 기사들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죽음을 경험해야만 한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사체로 발견되는 그런 현장을 찾아다니는 그에게 죽음이라는 것은 전기에 감전되는 것이기도 하고, 물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것이기도 하다. 화재로 인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어서 DNA감식을 해야만 사체의 신원파악을 할 수 있기도 하다.
그런 삶과 죽음의 경계를 두 눈으로 지켜봐야 하는 그에게는 그런 경계가 모호하기도 하다. 어디가 죽음이고, 어떤 것이 살아있음인지 불분명하게 느끼는 그는 그런 죽음의 냄새들이 체취에 강하게 묻어있다. 그가 야근할 때면 찾아가는 노목희는 문정수로부터 물에젖은 비린내, 숨막히는 화염의 매캐한 냄새, 도시의 차디찬 바람의 냄새들을 맡는다. 그런데 그 냄새는 어쩌면 죽음의 냄새인지도 모른다.
책은, 해망이라는 시골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작가가 그리고 있는 해망의 모습은 삶과 죽음의 경계가 모호한 곳이고, 그 모든 것들이 담겨있는 곳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공룡발자국의 화석이 갯벌위로 나있는 그곳은 수억년 전의 죽음에 대한 기록과도 같다. 뉴질랜드에서 날아오는 철새들이 잠시 경유지로 삼고 다시 시베리아로 떠나가는 모습은 인간의 정착지가 아닌 경유지로서의 느낌이 비유적으로 나타나있다. 타인의 죽음으로 해망으로 들어왔고, 죽어서 나가거나 죽음과 연관되면서 그곳을 떠나게 되기도 하는 유랑민들의 모습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살아가야 하는 인간들의 모습과도 같다. 해망의 강한 붉은 빛의 노을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자연경관에 빗대어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곳 해망에서 문정수는 군대생활을 했고, 무장간첩의 죽음을 목격했다. 다시 해망을 찾게 된 이유는 애지중지 키우던 날개라는 개한테 물려죽은 아이 어머니의 고향이 해망이라는 곳이었기 때문이고, 그 이후로 해망은 문정수에게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떠나지 못하듯이 오고 싶지 않아도 찾을 수 밖에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해망은 미군공여지로서 미군들의 전투기의 사격으로 그들의 포탄이 근처에 보이는 뱀섬으로 떨어지는 곳이기도 했다. 그곳을 넘나드는 이들의 삶과 죽음만이 아니라 하나의 지역자체가 수년간의 폭격과 그 이후 간척이라는 개발로 죽어가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어쩌면 해망의 이런 운명은 그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죽음을 예견하는 것일 수도 있고, 개발공사를 진행하던 중장비에 깔린 방미호의 목숨은 해망의 운명과도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렇게 삶과 죽음의 경계가 되어버린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며, 소설 속의 해망은 바로 우리가 발딛고 있는 땅과 다르지 않다.
김훈 님의 글의 특징은 주인공이라는 등장인물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소설이 전개되기 보다는 그 이야기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종합적으로 전개시켜간다는 데 있을 것이다. 소설 <공무도하>도 박옥철, 장철수, 오금자, 후에, 방천석 이라는 인물들이 사건과 관련된 인물들이고, 문정수는 그들과 연계되어 기자라는 신분으로 관찰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타이웨이와 노목희는 그들의 삶을 <시간너머로>라는 책을 통해 인문학적 성찰로 이끌어낸다.
소방관 생활을 그만두고 해망으로 넘어온 박옥철, 노학연대 활동에서의 배신이라는 이유로 해망으로 떠밀려온 장철수, 개에 물린 아이의 엄마인 오금자, 베트남에서 국제결혼으로 한국에 넘어왔다가 가출하고 해망에 정착하게 되는 후에 그리고 방미호의 죽음으로 해망을 떠나는 그의 아버지 방천석은 삶의 끝에 다다라있는 느낌이 나는 인물들이다.
작가가 강을 건너지 마라는 ‘공무도하’의 제목을 단 것은 어쩌면 이들 다섯처럼 살아가는 현실의 인간들에게 삶의 안쪽으로 더 깊이 들어오기를 갈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삶과 죽음이 인간의 의지로 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자꾸 강쪽으로 가고 있는 삶에 대한 비감이 묻어있다는 느낌이 들게 만든다.
인간, 개인으로서의 인간의 모습에 집중한다는 느낌이 강한 김훈 님의 소설은 그래서 더더욱 인간에 대한 탐구와 고민이 크게 깃들어있다는 느낌을 책을 읽을 때마다 받게 된다. 특히 어떤 가치에 대한 저자의 정서나 입장이 느껴진다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인간의 모습 깊숙이 파고드는 매력이 <공무도하>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강의 건너편으로 건너가지 못한 강의 이쪽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저자가 표현한 것처럼 저자는 삶과 죽음에 대한 가치판단을 하고 있지도 않다. 죽음이 그렇게 슬프게 다뤄지지도 않고, 살아있는 것 자체가 그리 좋아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살 곳을 잃어버린 갯장어가 아스팔트를 넘어가는 장면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을 들게 만들고, 그런 사람들의 삶을 신문지면에 꺼내놓지 않으면서 그것이 더 진실된 것이라고 믿는 문정수의 모습같은 부분에서 저자의 고민을 그대로 엿볼 수 있는 듯 하다.
다른 작가의 소설도 그러하겠지만, 김훈 님의 소설은 저자의 리듬을 타지 못하면 정말 지루해질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처음보다는 두 번째 소설이, 그보다는 그 다음 소설이 더 매력적이게 다가온다.
글은 건조하고, 사건은 평이한데다가 감정이입이 쉽게 될 수 없는 건조하면서도 관조적인 시선은 책을 중간에 덮을 수도 있다. 하지만 소설의 리듬을 타기 시작하고, 저자의 생각을 따라가다보면 이만큼 매력적인 소설을 찾기도 쉽지 않다. 나에겐 <남한산성>, <칼의노래> 그리고 <공무도하>가 그러했고, 앞으로도 저자의 소설이 무척이나 기다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