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 [Welcome]
ⓒ (주)피터팬 픽쳐스
웰컴 [Welcome]
감독 필립 리오렛
출연 뱅상 랭동, 피랫 아이베르디, 오드리 데이나, 올리비에 라보르딘 등
2009. 프랑스.
@ 씨네큐브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환영의 인사 ‘welcome’이라는 단어가 모든 이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집 앞 현관에 놓여있는 발판에 새겨진 이 단어는 적어도 집주인이 환영할만한 사람에게나 적용되는 단어일 뿐이고, 그 리스트에 들지 못한 이들에게 ‘welcome’이라는 단어는 그 어떤 단어보다 훨씬 잔인한 말이 되고만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여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수많은 외국인들을 대체로 환영하지만 그 환영인파 속에 들 수 없는 이들이 있다. 외화벌이를 해주는 외국인 관광객, 한국의 투자와 합작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들어오는 외국인 비즈니스맨 그리고 한국에서 공부하겠다며 들어오는 유학생 정도가 공항이나 항구에서 ‘welcome’이라는 단어를 듣게 되는 부류이지 않을까 싶다.
오늘도 한국 땅 어느 곳에서는 단속반의 감시를 피해서 몸을 숨겨야 하며, 그 흔한 구멍가게나 편의점조차 들락거리지 못한 채 방구석에 처박혀 긴 겨울밤을 지새야 하는 외국인들이 많다. 이주노동자라고 이름붙여진 이들은 여권이 있어서 합법적 신분이면 좀 낫겠지만 사회적 시선은 그들에게 별 차이없이 냉대를 보낸다.
이동수단이 걷는것 밖에 없을 적에나 한 번 쯤 상상이나 해봤을까 싶은 4000km라는 엄청난 거리, 그 길을 걸어서 비랄이 도착한 곳은 프랑스의 칼레라는 지역이다. 그가 이 곳을 찾은 이유는 런던에 있는 그의 여자친구를 찾아가기 위해서였고, 칼레는 브리튼섬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유럽의 지역이다. 이제 35.4km의 거리만 남아있는 그에게 마지막 35.4km는 자신이 걸어온길의 백분의 일도 안되지만, 그 거리보다 100배는 멀어보인다. 이유는 간단하다. 마지막 35.4km를 건널 수단이 그에게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랄은 영국으로 넘어가려는 다른 많은 이주민들처럼 500유로라는 거금을 내고 영국행 트럭에 몰래 올라탄다. 영국으로 들어가는 국경근처에서 트럭 안으로 이산화탄소 검사를 하기 때문에 비닐봉지로 얼굴을 뒤집어쓴채 장시간을 버텨야 하는 상황을 비랄은 견뎌낼 수가 없다. 특히 고향에 있을 때 다른 쪽 군인들에게 비슷한 고문을 당해야 했던 그의 경험은 단 1초도 비닐을 뒤집어 쓰고 있는 상황을 허용하지 않는다. 영화 보면서 많이 놀랬던 장면 중 하나인데, 검문방식마저 인간의 기본권을 위협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물론 그럴거면 합법적으로 이동하든가 아니면 포기해야한다는 주장을 만난다면 그 방식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더 이상 이야기할 거리가 없어지겠지만, 다른 많은 상황을 고려한다면 인간이 내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이산화탄소를 찾아내는 검문방식은 살아있는 생물체임을 포기해야만 하는 순간을 겪어야 한다는 점에서 그냥 보아넘기기가 어려운 장면이기도 했다.
ⓒ (주)피터팬 픽쳐스
어쨌든 비랄로 인해 그의 일행은 영국으로 밀입국하는데 실패했고, 눈 앞에 브리튼섬이 보이는 칼레의 바다에 서서 비랄은 헤엄을 쳐서 바다를 건널 생각을 한다. 그리고 수영장을 찾은 비랄은 그곳에서 수영강사 시몬과 만나게 된다. 수영강사인 시몬은 그의 아내와 별거중인데, 공교롭게도 그의 아내는 외국인 불법체류자를 돕는 자원봉사자이고 세상일들에 신경을 쓰지 않으려는 시몬의 태도에 이기적이라는 말로 대답을 대신한다. 아내의 영향이었을까, 시몬은 비랄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끼기 시작하고 서서히 그를 도와주고 응원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사랑과 우정에 대한 이야기를 불법체류자 비랄과 그 주변인물들을 통해 꺼내고 있다. 비랄의 사랑은 ‘로미오와 줄리엣’보다 훨씬 처연하게 느껴진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얼굴이라도 볼 수 있지만, 비랄과 그의 여자친구는 전화통화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처지에 있다. 비랄은 다른 이유없이 오직 사랑을 위해 4000km라는 길을 걸어왔고, 아버지의 정략결혼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는 그녀를 하루라도 빨리 만나기 위해 마지막 남은 35.4km를 건넌다.
시몬은 비랄을 통해서 자신의 사랑을 되돌아보게 되며, 자신이 해내지 못한 용기를 비랄만큼은 지켜낼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싶었고 비랄을 통해서 서서히 자신도 용기를 내기 시작한다. 형식상으로는 시몬이 비랄을 도와주는 관계로 보이지만, 실제로 시몬은 비랄을 통해 자신에 대한 성찰과 자신의 가장 큰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삶의 용기를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시몬이 비랄에게 집착과 같은 모습을 보였던 영화의 후반부는 어쩌면 자신을 새롭게 태어나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비랄로 느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제 용기내기 시작한 자신의 삶이 비랄의 무너짐으로 자신도 무너지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은 시몬으로 하여금 자꾸만 비랄에게로 향하게 만들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우정이라는 것이 단지 서로 잘 알고 이해하는 수준이라면 우리는 친구, 우정이라는 단어에 집착하거나 신경쓸 필요가 없을 것이다. 관계의 질을 높이기 위한 과정도 그리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살아가면서 고통과 아픔의 산을 함께 넘어가 줄 수 있는 그 한 사람, 시몬과 비랄은 서로에게 그런 관계였던 것이다.
인간이 인간다움을 느낄 수 없을 때만큼 비참한 경우는 없을 것이다. 지금도 ‘불법체류자’라는 이름이 붙여진 수많은 이들이 전 세계 곳곳에서 인간다움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가고 있다. 우리라고 해서 상황이 다른 것은 아니다. ‘법’이라는 것이 모든 인간의 기본권을 기초로 해서 그 기본권을 지키기 위한 지향을 가지고 있다면, 이제 진지하게 이 문제를 돌아봐야 할 시점일 것이다. 그것이 법치국가의 기본적인 믿음을 잃지 않도록 만드는 길이기도 하다. 제발 경제적 지표가 사회발전의 모든 기준인 양 으스대지 말고, 사회구성원들의 만족도와 사회적으로 소외받는 이들에게 신경을 썼으면 한다. 그렇게 경제가 발전됐다고 자축할 정도라면 말이다.
용기있는 소년 비랄, 그리고 그 용기를 자연스럽게 이어받는 시몬은 추운 겨울 따뜻한 용기를 선사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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