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일의 썸머 [500 days of summer]
ⓒ 20세기폭스 코리아
500일의 썸머 [500 days of summer]
감독 마크 웹
출연 조셉 고든-래빗, 조이 디샤넬, 패트리샤 벨처, 레이첼 보스턴, 조프리 아렌드,
클로에 모레츠, 매튜 그레이 구블러 등
2009. 미국.
@ 시네마 정동
영화 <예스맨>에서 조이 디샤넬을 본 후 그녀의 은근한 매력에 빠져들었다. 사실 그때만 해도 매력적이라고 생각한 정도에 불과했는데, <500일의 썸머>를 보고난 후 조이의 매력은 헤어나올 수 없다는 걸 깨달아버렸다. 사실 연기는 논외로 치고라도, 외모만으로 여신이라 불리는 배우라 하면 나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은 페넬로페 크루즈, 케이트 블랑쉐같은 배우들이라 할 수 있겠다. 헌데, 그들보다 더 예쁘다고할 수는 없지만 조이 디샤넬은 그들과는 전혀 다른 매력으로 사람을 끌어들인다.
<500일의 썸머>에서 ‘썸머’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조이 디샤넬, 영화속에서 날려주는 그녀의 미소에 나는 그만 정신을 놓아버렸다. 이제 영화속 여배우에 눈과 마음을 빼앗겨버렸다는 게 정말 부끄러운 나이지만 그래도 인력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 세상에는 얼마든지 많다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만큼 영화는 ‘조이 디샤넬’의 매력으로 똘똘 뭉쳐있는 로맨스 영화이며, 적어도 나에게는 영화 <500일의 썸머>가 ‘조이의, 조이를 위한, 조이에 의한’ 영화였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로맨스 영화의 기본적인 패턴은 운명처럼 이어지는 우연과 그 우연을 인연으로 만들어가는 한쌍의 연인과 그들의 연애과정에서 생기는 오해와 상처들로 인한 위기 등으로 전개된다. 그리고 그 위기를 잘 넘겨서 둘의 사랑을 잘 이어가는 이야기는 보통 로맨틱코미디류의 결말이 되고, 그반대로 어떤 위기를 넘기지 못하고 가슴아픈 사랑이야기로 끝을 맺는 경우는 그 반대의 일반적 경우라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때문인지 로맨스 영화는 배우들의 연기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는 경우들이 많은 듯 하다.
헌데 영화 <500일의 썸머>는 로맨스영화의 이런 패턴을 따르지 않고 있고, 이점이 이 영화가 지니는 두 번째 매력이라 할 수 있겠다(첫번째는 누가뭐래도 조이 디샤넬!!). 탐의 사무실 사장의 비서로 썸머가 출근을 시작한 날, 탐은 그녀를 본 순간 이를 운명이라 믿으며 그녀에게 빠져들어간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의 보편적인 사람들의 행동을 탐 또한 그대로 따라하면서 설렘과 좌절 등을 거듭하다 끝내 그녀와 깊은관계를 만들어가게 된다. 그런데 부모의 이혼이라는 어릴 적 아픈 기억을 지니고 있는 썸머에게는 관계가 깊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그 두려움으로 인해 자신의 모든 것을 탐과 공유하지 못하게 되고, 연인이라면 당연히 모든 것을 공유해야 한다는 생각을 지닌 탐은 그런 썸머를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소유와 집착은 사랑의 반대말이 아니라 ‘사랑’과 공존하는 말일 것이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과 그에 따른 집착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사랑과 집착은 종이 한 장 차이라 할 수 있다. 겉으로 봤을 때 탐과 썸머는 정말 잘 어울릴 뿐 아니라 관계에서 큰 문제가 있지도 않다. 다만, 관계에 집착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썸머에게는 심하게 컸다고 할 수 있고, 결국 그 둘은 헤어지게 된다. 사실 둘에게 헤어져야 할 결정적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사소한 이유도 크게 보이고, 관계 속에서 공허함같은 것들이 느껴지는 우리들의 관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들을 탐과 썸머를 통해 다시금 곱씹게 된다. 그래서 이 영화가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고, 감독은 영화 첫머리에 자막을 통해 ‘이 영화는 허구이기 때문에, 주위의 비슷한 사람이 영화에 등장한다고 하더라도 그건 우연’이라는 말로 비유하고 있다.
ⓒ 20세기폭스 코리아
이 영화가 인상적이었던 점은 ‘우연’과 ‘운명’을 다루는 방식에 있다. 사실 수억마리의 정자 중에서 선택된 단 하나의 정자와 난자의 결합으로 인간이 태어나는 과정부터, 우리네 삶은 우연으로 일관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우연들을 극대화시켜 자극을 전달하는 수많은 멜로영화와는 달리 영화 <500일의 썸머>는 그 우연들을 일상적으로 다루고 있다. 영화에서 가장 우연성이 큰 부분이 엔딩씬이라 할 수 있겠는데, 그 또한 ‘여름’다음 ‘가을’을 만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그냥 웃으면서 받아들일 수 있던 것도 바로 일상적으로 우연과 운명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썸머가 어느날 커피숍에서 우연히 만난 남자를 운명이라 느끼며 결혼에 골인하는 과정도 그 이야기자체는 비현실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영화는 그저 ‘나 애인생겼어’와 전혀 다르지 않은 말처럼 덤덤히 꺼내고 있다.
만약에 운명이 있다면, 세상에 벌어지는 수많은 우연과도 같은 일 중에 자신과 관련이 되는 그런 것이 바로 운명일 것이다. 그래서 우연이나 운명도 그냥 일상에 다르지 않다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한다. 때문에 자신과 닿지 않은 인연으로 괴로워할 필요도, 지금 인연이 닿았다고 해서 환호성을 외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냥 현재의 관계에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필요할 뿐이지 않겠는가.
때문에 이 영화는 사랑의 상처를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위로를 건네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지나간 인연에 얽매이지 않기를, 현재의 인연에게는 운명이라는 믿음으로 대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느껴진다. 어차피 모든 관계는 (결론적으로) 우연에 의해 만들어졌을테니 말이다.
오랜만에 만나게 되는 정말 마음에 드는 멜로영화였다. 물론 조이 디샤넬이 결정적 이유가 되긴 했지만, 그건 영화 속 캐릭터와 거의 100%에 가까운 씽크로율을 보여주었기 때문이지 그냥 서있는다고 모두가 매력이 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보는 이의 감정노동을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사랑과 이별, 행복과 상처 등 사랑하는 이들의 심리와 내면이 잘 드러나 있고, 그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이 영화가 참 마음에 든다. 그리고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는데, 그건 역시 조이 디샤넬!을 다시보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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