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크 [Milk]

밀크 [Milk]
감독 구스 반 산트
출연 숀 펜, 에밀 허쉬, 조쉬 브롤린, 
      제임스 프랭코, 디에고 루나, 
      앨리슨 필 등
2008. 미국.
@ 씨네큐브
 
     



ⓒ 스폰지이엔티





지난 해 아카데미 시즌은 그 어느 때보다 괜찮은 작품목록들이 올라왔다. 작품상인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왜 작품상을 받았을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쟁쟁한 라인업들이었다. 작품상 후보에 오른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프로스트 vs 닉슨>, <밀크>, <더 리더>는 물론이거니와 여러 곳에 후보로 올라와있는 <다우트>, <더 레슬러> 등과 함께 <그랜토리노>와 <레볼루셔너리 로드>등의 영화들이 같은 시즌에 개봉을 하면서 영화보는 재미에 푹 빠져들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런데 유독 <밀크>만 개봉이 늦어졌는데, 영화 개봉소식은 종종 들려왔던 걸 보면 이미 수입이 된 상황이었던 것 같지만 실제 개봉은 이제서야 이뤄졌다. 구스 반 산트 감독과 숀 펜이라는 배우의 조합만으로도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지만, 영화가 지닌 내용과 하비 밀크라는 실제인물의 이야기라는 점은 이 영화가 자아낼 감동을 미리부터 짐작케 해준다. 그렇게 1년여를 기다린 끝에 극장에서 영화를 보게 되었다.

영화는 잘 알려진대로 '하비 밀크 (하비 버나드 밀크)'라는 실제 인물의 죽기 전 8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영화이다. 영화는 하비 밀크가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자신이 암살될 것이라는 점을 미리 예견하면서 자신이 살아온 과정을 녹음하는 과정으로 시작된다. 그렇게 기억될만한 사건들의 앞부분에는 밀크의 독백으로 시작되면서 영화가 전개된다. 여전히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동성애자였던 밀크는 샌프란시스코의 시의원으로 당선되는 정치사에 길이남을 업적을 1970년대에 만들어낸다. 하지만 기독교 원리주의자들을 바탕으로 하는 수많은 보수주의자들은 밀크의 태도가 달갑지 않았고, 눈엣가시였던 그에게 내외적인 위협을 가한다.
50이 채 못된 나이에 자신의 죽음을 예견할 수 밖에 없음은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슬픈일이다. 그것도 지병에 의한 죽음이 아니라 스스로 정치적인 타살을 예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은 보는 이의 가슴을 울린다. 그런 까닭인지, 영화에서 숀 펜의 독백으로 이루어지는 자신의 과거를 일기처럼 읊어내리는 장면이 참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장년의 한 정치가이자, 활동가의 가슴 시린 고백은 어떤 극적 전개보다 더 강한 울림을 지니고 있다.

실제의 하비 밀크의 성격이 어떠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영화 속 하비 밀크는 우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정치가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다른 이익 앞에서 절대로 꺾지 않는 신념을 지니고 있고, 대중들을 선동하는 카리스마와 선동력을 지니고 있다. 또한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닐 경우에는 양보 혹은 연대하는데 스스럼없는 유연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자신과 함께하는 동료들과 그를 따르는 수많은 동성애자들 앞에서 떳떳할 수 있는 양심과 그에 따른 행동을 보여준다. 그는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시의원에 당선되었다기보다는 이런 자신의 품성과 정치가로서의 태도들이 대중들로 하여금 그를 선택하게 만들었고, 결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교직에서 동성애자를 축출시켜내자는 보수주의자들의 법안도 저지시켜낼 수 있었던 것이다.
동성애자들에 대한 시선은 많이 좋아지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것이 사실이다. 동성애자들의 결혼을 인정하는 나라도 있지만, 부정하는 국가가 훨씬 많고 국가적으로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모든 국민들이 그것을 받아들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도 그러할진대, 30여년 전의 세상은 더욱 심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을 이겨내고 스스로 동성애자임을 밝히면서도 그는 자신의 뜻을 지키고, 동성애자들의 권리를 옹호해낼 수 있었다.
하비 밀크는 사실 매우 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인물이다. 40살에 만난 새애인과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하면서 그는 자신과 동성애자들을 둘러싼 편견들을 그냥 넘길 수 없었고, 그때서부터 직접 싸움에 나서기 시작한다. 활동가에게 중요한 것이 이론보다는 실천임을, 그리고 자신과 같은 아픔을 겪고있고 같은 경험을 하는 이들과의 연대가 중요함을 그는 그의 삶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랬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랐고,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한 데로 힘을 모을 수 있던 것이다.

ⓒ 스폰지이엔티


난 <밀크>라는 영화를 보면서 영화의 위대함을 다시 한 번 느낀다. 동성애를 옹호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그에 대한 관심을 깊게 지니지 못한다면 쉽게 알아낼 수 없던 그들의 역사와 하비 밀크라는 인물에 대해 영화는 매우 직관적이면서도 감동적으로 전해주고 있다. 영화이기 때문에 미화된 점이 있을수는 있어도 기본 바탕이 실화에 깔려있는 이 영화에서는 현실의 하비 밀크와 그리 달라보이지 않는다.
거기에 현실의 씁쓸함까지 더해주는 영화는 단지 과거 영광의 순간을 전해주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친구사이>라는 영화의 메이킹 필름에서 광화문에서 게이 둘이 키스하는 장면을 찍을 때,  옆을 지나가던 외국인이 하늘이 보고있는데 부끄럽지 않냐고 대노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직도 많은 이들의 시선은 동성애를 파렴치한 행위로 보고 있기도 한 것이 현실이다. 이런 현실과 삼십년 전의 세상에서 오늘의 영화로 타임머신을 타고 넘어온 하비 밀크와 그의 친구들의 모습이 대비되는 씁쓸함은 이 영화의 가치를 더욱 높여주고 있다.

영화에는 당시의 장면들이 종종 등장하는데, 당시의 인물들과 극중 인물들의 모습과 분위기가 상당히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는다. 애써 캐릭터를 당시 현실의 인물들과 비슷하게 창조해냈겠지만, 당시의 사건을 충실히 담고자 하는 노력이 아니었다면 쉬운 점도 아니었을 것이다. '구스 반 산트'라는 이름에 또 다시 경의를 표하게 된다.
작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 수상자 숀 펜이 수상소감을 발표할 때, 'commie! homoloving sons of guns' (정확한 표현인지는 잘 모르겠음) 라는 멘트를 날렸다는 건 매우 유명한 일화다. 왜 그렇게 하느님께 감사하다는 인사가 많은지, 종교행사에 온 것 같은 느낌의 우리나라 시상식과는 정말 분위기가 다르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이 수상소감을 보면서 (원래도 좋아했지만) 숀 펜을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영화가 빛이나는데는 조연들의 연기도 한 몫 하고 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 등장하는 조쉬 브롤린이 하비 밀크를 암살하는 댄 화이트 역을 맡고 있는데, 자신의 무능함과 권력욕, 즉흥적인 암살까지 짧은 순간순간들이지만 상당히 인상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그 외에도 밀크의 애인인 스콧역을 맡은 제임스 프랭코를 비롯한 많은 배우들이 영화 속에서는 밀크의 시의원 당선을 위해, 영화밖으로는 영화의 성공을 위해 제 몫을 해내고 있다.
아마도 내가 뽑는 올해의 영화에 꼭 들어가야 할 작품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덧. 하비 밀크는 2009년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대통령 자유메달을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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