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놀라지 마라





너무 놀라지 마라
연출 박근형
출연 장영남, 김주완, 김영필, 이규회, 이호웅
제작 극단 골목길
@ 산울림 소극장

 


열흘 전쯤 홍대앞에 가게되어 산울림 소극장앞을 지나게 됐는데, 산울림 소극장에 걸린 연극 홍보 걸개가 눈에 박혔다. 연출가 박근형, 극단 골목길, 배우 장영남, 이렇게 세 이름은 모두 나의 관심사 안에 들어있는 이름인데다가 한 작품에 걸려있는 이 연극은 반드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기에 충분했다. 극단 골목길의 최근작 중에는 지난해에 본 <갈매기>라는 연극이 생각나는데, 안톤 체홉의 동명의 원작을 연극으로 만든 이 작품도 매우 만족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3월 7일까지라는 시한이 걸려있었기에 주말에 애써 시간을 내고 산울림 소극장을 찾았다.

연극 <너무 놀라지 마라>는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들여다보게 하는 작품이다. 가족의 집이 무대로 되어 있는 연극의 초반부에 이 가족의 아버지가 자신의 친구의 죽음을 아들에게 전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친구가 자살하면서 유서로 남긴 내용 중에 한 마디가 바로 '너무 놀라지 마라'라는 것이다. 제목이 주는 분위기는 연극 전반에 흐르고 있는데, 콩가루같은 이 가족은 자신의 삶을 보면서 너무 놀라지 말라고 관객들에게 전하는듯 보이기도 한다.
이 가족은 시아버지와 시동생 그리고 며느리와 남편 이렇게 이루어져있다. 남편은 영화를 만드는 감독인데, 경제적으로는 무능하고 집에 들어오는 일은 월례행사에가 가깝다. 시아버지는 소일거리로 낚시를 하고 있고, 시동생은 엄마의 가출 이후 집밖으로 한번도 나간적 없으며 맛살만 먹다가 심한 변비에 걸려 있다. 그래서 어쩔수 없이 며느리가 집안의 경제적인 문제를 비롯해 집안일을 책임지고 있다. 노래방 도우미라는 직업을 하면서...


이들의 삶은 모두가 극단적이다. '너무 놀라지 말라'며 자신도 친구따라 죽음의 길을 택하는 시아버지나, 보편적인 시선으로는 미쳤다는 말로 밖에 설명되지 않는 시동생은 형수의 일거수 일투족을 엿보면서 욕망에 젖고, 심지어 엄마의 품안에 뛰어드는 어린 아이마냥 형수의 침대 속으로 서슴없이 들어가기도 한다.
이들의 극단적인 일상은 숨통을 조여드는 듯 보이지만 이들에게는 아무렇지 않다. 어느날 노래방에서 2차를 가자는 말에 모텔이 아닌 집으로 데리고온 남자와 다음날 맞닥뜨린 남편도 그냥 그러려니 한다. 이미 아내와 동생의 관계를 알고 있는 남편에게는 이 조차도 그냥 일상의 단편처럼 다가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들의 극단적인 일상은 지독하게 슬프다. 개인적으로 이들의 관계 속에서 나는 지독한 외로움을 엿보고 그것이 폐부를 찌르는 듯한 슬픔이 전해져 온다. 이들에게 불륜을 저지르거나 불륜을 목격하거나 하는 문제는 그리 중요한 문제처럼 보이지 않는다. 되려 그런 일이라도 벌어졌으면 할 정도로 뜨겁지않은 이들의 일상과 관계에서의 무심함이 지독할정도로 외로움을 느끼게 만든다. '오죽했으면...'이라는 말이 입 속에 머물정도로 이들의 삶에 연민을 느끼게 된다.
너무나 당연한 것일테지만, 사람이 옆에 있다고 해서 외로움을 덜 느끼는 것은 아니다. 소통과 욕망의 부재는 이들에게 삶의 의욕이라는 것을 앗아가버렸고, 하루하루 이어지는 비루한 일상은 내일 또 반복될 수 밖에 없는 현실이기에 '희망'이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집을 떠나 살아가고 있는 영화감독 남편에게나 희망이 있을까 싶지만, 그 역시 집을 벗어나는 행위가 도피에 지나지 않는다.
극의 상황이라는게 매우 연극적이지만 그안에 담겨있는 정서는 대단히 현실적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이들의 외로움이 처한 상황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들이 모여 이루어지는 삶이라는 것 자체의 외로움을 보여주는 듯 하기도 하다. 그래서 나와는 전혀 다른 그들의 현실이지만, 어쩌면 비슷한 외로움을 느끼게 됐는지도 모른다.

장영남씨를 비롯해 연극 <갈매기>에서 본 적이 있는 김주완, 김영필 씨의 연기도 매우 훌륭하다. 시작하자마자 자살하고 목을 매달고 연극이 끝날때까지 견뎌야했던 이규회씨와 배우 이호웅씨의 연기도 좋다. 그보다 '극단 골목길'이라는 개인적으로 계속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게 될 극단을 알게 되어 더 좋았던 연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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