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할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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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를 하는 재미를 꼽으라면 주저없이 소통의 재미라고 말할 수 있다. 오프라인의 친구들과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현재와 미래의 삶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한다. 그리고 같은 경험과 추억을 곱씹으며 같이 웃고 울기도 하는 소중한 관계들임에는 분명하다. 그런데 모든 오프라인의 친구들과 관심분야가 같을 수 없기에 모든 소통을 하기에는 쉽지 않은 면도 있다. 특히 나의 경우에는 영화와 책, 연극과 같은 공연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눌 수 있는 오프라인의 관계가 많지 않기 때문에 블로그라는 소통의 공간은 매우 재미있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때론 비슷한 감상을 통해 서로에게 공감하기도 하고, 때론 다른 감상으로 다양한 이해를 넓히기도 한다. 이런 블로그의 소통의 재미는 어쩌다가 일어나는 트래픽 폭탄같은 것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블로그의 매력이라 하겠다.
그런데 요즘에는 트위터라는 네트워크가 생겨나면서 이런 소통의 공간이 하나가 더 생겨났다. 블로그가 좀 더 주제화되어 있다면, 트위터는 더 많은 현상과 관심거리에 대한 단면들을 편하게 웃고 떠들수 있는 공간이다. 블로그가 주는 것만큼의 매력은 없지만 트위터도 나름 삶의 재미를 더해준다.
이런 온라인 상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다보면 의외로 서로 도움을 주고받거나 서로에게 선물을 전하는 경우가 간혹 생기는데, 이런 것도 또 하나의 네트워크가 지니는 매력이다. 이 이야기를 구구절절 쓴 이유는 바로 책 <여행할 권리>를 트위터의 이웃분의 선물로 읽게 되었기 때문이다. 김연수씨의 소설에 대한 리뷰로 시작된 김연수의 이야기를 오래전에 한적이 있는데, 그걸 기억하고 김연수씨의 책을 선물로 전해준 이웃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그리고 이런 네트워크의 매력은 블로그나 트위터에 더욱 빠져들게 한다.
책은, 작가 김연수의 여행에세이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책이다. 헌데 이 책은 단순히 에세이라고만 규정하기가 좀 모호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인문학 서적같은 느낌의 글의 내용에 여행의 순간들을 담은 여행에세이 성격이 짙으면서도 삶과 문학, 여행에 대한 깊은 사색이 담겨있는 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실 많은 이들의 추천이 따라붙는 작가 김연수씨의 소설에서 개인적으로는 그만큼의 감동을 못느꼈던 상태였는데, 이 책은 이전의 감상들에서의 부족한 지점들을 메워줄만큼 상당히 인상적인 책이었다.
제목만 보면 언뜻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며 부추기는 상업광고문구를 생각나게 하는 책이지만, 김연수라는 이름은 그런 상업성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
책은 작가의 고민과 사색의 지점이 어디에 닿아있는지를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1999년 도쿄에서부터 2007년 미국의 버클리까지를 여행 혹은 유학하면서 느낀 점을 담고있는 이 책은 보통의 여행관련책에서 느낄 수 있는 여행지를 머릿속에 그림그리는 듯한 감상은 얻을 수 없다. 저자는 '국경'이라는 문제에 대한 고민을 십여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하고 있었고, 어쩌면 지금도 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런 고민들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유일한 국경은 함부로 넘어갈 수 없는 한국이라는 땅에서 살고있는 우리들에게 국경선이라는 의미는 실감이 잘 나지 않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실감나는 문제이기도 하다. 여권한장 보여주며 그냥 넘어설 수 있는 유럽의 어느 한 국경선이 아니기 때문이다. 책의 저자 김연수는 이런 국경을 넘어서는 문제에 대해서 문학과 삶과 역사라는 다양한 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우리네 역사에서 국경선 너머는 '조국과 민족을 배반한 배반자들의 땅'이었다고 책은 이야기 하고 있다. 외세의 침략의 역사에서도 그러했지만, 오늘의 현실에서도 한국국적을 버리고 외국국적을 취득한 사람들을 향한 시선은 오래전 배반자들을 향한 시선과 그리 달라보이지 않는다.
저자는 글쓰는 직업을 가진 이라 그런지 '국경'의 문제와 문학의 문제를 연관시켜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 게 느껴진다. 많은 이들이 국경 안에서의 문학적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고, 특히 한국이라는 사회역사적인 특수성을 지는 국가에서는 그 국경이 가두고 있는 사고의 틀거리는 육체적 이동의 가로막힘보다 훨씬 강하게 느껴진다. 그도 그럴것이 생각 혹은 창작이 국경밖으로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훨씬 심각한 문제임에 틀림없다.
이렇게 책은 국경이 문학이나 역사 혹은 현재의 삶에서의 연관성을 작가가 느끼고 고민하는대로 그려져 있다.
이 책은 당연하게도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김연수씨 본인이 직접 다니면서 만난 이들의 삶을 투영시키면서 그들을 통해 또다른 삶의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삶이 매우 평범하다고 느낄 것이고, 훈춘에사는 이춘대씨의 표현처럼 '일없는' 일상의 연속일 수 있지만, 저자의 눈을 통해 투영된 그들의 삶은 참으로 독특해보인다. 그건 어쩌면 여행이라는 것이 주는 결정적 매력일수도 있겠다. 또 다른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할 수 있는 '여행'이라는 것은 그곳의 사람들과의 교감을 통해서 더 새로워질 수도 있을 것이다.
괜찮은 풍경과 실속있는 정보가 들어있지 않지만, 그 어떤 여행기보다 더 깊이있는 여행기라는 느낌이 드는 건 바로 책 속에 들어있는 많은 인물들의 이야기 때문이다.
이제 일주일 후면 유럽으로 두 달정도 떠날 예정이다. 수개월동안 준비하면서, 사실 준비하는 과정이 짜증스러운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고 그런 나 자신을 보며 즐길것을 왜 즐기지 못하는가라는 질문을 몇번 던진 적이 있다. 책의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나는 여행에서 벌어질 수많은 실수와 좌절을 껴안을 생각이다. 그것도 여행의 한 부분이자 경험이라고 생각할수 있는 여유와 용기라는 마인드를 지니게 해주는 책이 참 고맙다.
여행에서 느끼는 주제화된 이야기들의 모음이었던 이 책은 책이 담고 있는 그대로의 내용만으로도 흡족하지만, 책은 많은 사람들이 꿈꾸고 있는 여행에 대한 색다른 감상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내가 아닌 다른 존재를 찾고자 하는 대부분의 여행을 꿈꾸는 이들에게 내가 아닌 다른 존재와 나 자신이 만나는 공항에서의 여권확인과정이라는 역설처럼 우리의 삶도 그렇다는 걸 느끼게 해준다. '덧없이 반복적으로 스쳐가는 것들만이 영원하다.'라는 책속의 멘트는 삶이라는 여정에 대한 생각을 만들어낸다. 이런 상당한 깊이의 사색이 담겨있는 점은 이 책이 지는 가장 큰 매력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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