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인하우스필름





감독 이창동
출연 윤정희, 이다윗, 김희라, 안내상, 김용택, 박명신 등
제작 파인하우스필름
2010. 한국.
@ 롯데시네마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는 단 한 편도 실망해본 적이 없다. 아니 아쉽다는 생각을 가져보지도 못했던 것 같다. 심지어 각본에 참여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그 섬에 가고싶다>도 만족스러웠고, 제작에 참여했다는 <두번째 사랑>, <여행자> 또한 기억에 오래 남는 영화였다.
국어선생님이기도 했고, 소설가이기도 했던 이창동감독의 신작 영화 <시>는 제목에서부터 그의 문학적 분위기가 짙게 뿜어져 나온다. 그리고 영화는 한 편의 문학작품처럼 흘러가는 느낌을 준다.

영화는 주인공 미자를 중심으로 두 갈래의 이야기가 흘러간다. 자신과 단 둘이 지내고 있는 손자와 그의 친구들이 저지른 성폭행 사건과 중학생 한 아이의 자살이 한 쪽의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시'를 한 번 써보고 싶은 갈망을 실현하기 위해 미술강좌에 나가고, 시발표회 참석하면서 만들어가는 관계와 미자의 시에 대한 생각이 그것이다.

영화를 보고난 후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가 예술, 아름다움 등에 대한 진지한 사색을 던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주인공 미자는 시가 너무 써보고 싶지만, 단 한 줄의 시상을 떠올리는 것도 쉽지 않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표현해보라는 이야기는 강좌에서도 듣고, 시를 쓰는 다른 이들에게도 자꾸 듣지만 그게 맘대로 되지 않는다.
그도 그럴것이 그에게 세상은 그리 아름다운 현실이 아닌 것이다. 먹고 살기 위해 하고 있는 간병일도 피곤하고, 하나뿐이 없는 손자이지만 엄마와 떨어져 할머니와만 살아서 그런지 버릇이 없는 손자는 애물단지다. 그런데 그런 손자가 집단 성폭행의 가해자의 한 명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 피해자는 자살한 현실은 그가 메꿔야 하는 500만원의 액수 이상의 무거움으로 다가온다.

언제부턴가 난 예술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는 믿음(이라고 하기엔 좀 거창하고, 그런 생각)을 지니게 됐다. 아마도 예술분야가 가장 진보적이기도 하고, 그것이 인간의 본질과 그들이 구성하고 있는 사회에 밀착될 수 밖에 없는 생리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 나의 이런 생각에 확신을 더해준다. 하지만 그것도 현실에 제대로 발딛고 서서 앞을 내다보는 작품이라야 하는 것이지 무턱대고 예술작품이 세상을 구원해내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영화 <시>를 이런 지점에서 바라보게 된다. 아무리 '아름다운' 시상을 떠올리려 해도 떠오르지 않는건 그것이 허공에 떠다니는 것들이기 때문이 아닐까. 주인공 미자가 단 한 편의 시를 쓰게 된 순간은 바로 자기 현실을 피하려 들지 않고, 그 현실에 몸을 부대꼇을 때라는 건 매우 의미있는 지점으로 다가온다. 손자의 범죄와 한 아이의 죽음, 그리고 그것을 수습하려는 부모들의 어찌보면 비겁한 행동, 거기에 죽음을 눈 앞에 둔 노인의 성욕까지...

ⓒ 파인하우스필름


피해자의 어머니에게 용서를 빌기 위해 찾아가는 길에서 만난 예쁜 꽃과 아름다운 농촌의 풍경에 시상을 생각하는 장면은 미자가 아무리 알츠하이머라는 병에 걸린 걸 감안하더라도 매우 비현실적인 장면이다. 그런데 이렇게 도드라지는 장면은 다른 측면으로는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라는 아이러니를 남겨준다.

철없어 보이는 할머니의 노망같은 이 장면은 보편적 시선과 부딪치는 비유적이면서도 상징적인 장면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그 보편적이라고 이름 붙여진 것들에 의해 왜곡되어져가는 세상의 편린들이 보여지기도 하는데, 자신들의 자식들의 범죄를 숨기려는 부모들의 모습 또한 그 중 일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철없어 보이지만 오직 미자만이 자신의 손자를 신고할 수 있었던 건 아마도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외면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이 죽었고,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분명한 사건과 가해자들이 있음에도 그것이 가리워지는 세상을 미자는 이해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자신의 손자가 가해자 중 일부라는 걸 모를 때 손자에게 '넌 친구가 자살했다는데 아무렇지도 않냐?'라는 물음과 손자가 가해자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 죽은 아이의 사진을 식탁에 올려놓는 미자의 모습은 어찌보면 잔인해보이기도 하지만, 현실을 왜곡시키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고 느끼려는 의지가 느껴지는 모습이기도 하다.

결국 미자는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단 한 편의 시를 써낸다. 그리고 그 시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아름답다고 칭송하는 다른 어떤 시들보다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인생과 삶의 깊이를 제대로 느껴본 사람만이 써낼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시라는 생각이 들고, 아마도 영화는 예술과 현실의 접점이 바로 그곳에 있다고 보여주는 듯 하다.

개인적으로 너무 잘 만들어져서 소름이 돋는 느낌이 드는 영화이기도 했다. 그런데 영진위의 시나리오 공모에서 0점을 줬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그런 영화가 최고의 영화제로 꼽히는 깐느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탔다는 점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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