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네시 [Les Catilinaire]

오후 네 시 - 10점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남주 옮김/열린책들





아멜리 노통의 1995년작 <오후 네시>는 쉽지않은, 그렇지만 꽤 흥미로운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있는 책이다. 내가 생각하고, 내가 만들어가고 싶은 '나'라는 존재와 실제의 '나'와의 간극이 벌어지게 되는 과정이 담겨있고, 이로 인해 주변의 관계들이 어떻게 새롭게 형성되고 깨어져 가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과정은 아멜리 노통 스럽게 조금은 엽기적이기도 하고 블랙 코미디와 같은 유머와 조롱을 담고 있기도 하다.

은퇴한 노교수 에밀과 그의 부인 쥘리에트는 한적한 시골마을에 자리를 잡는다. 자연으로의 회귀와 같은 자신이 생각했던 가장 이상적인 삶인 기계와 전자제품 그리고 복잡한 인간관계에 얽메이지 않는 그런 삶을 꿈꿔왔던 그들에게는 새로 자리잡은 그곳이 더없이 만족스럽다.
그런데 그들이 이사온 지 이틀째 되는 날, 오후 네시 정각에 옆집에 사는 베르나르댕이 찾아온다. 뭐, 이웃들과의 공감과 나눔을 기본으로 하는 시골생활이라 반갑게 그를 맞이하는 이들 부부는 그와의 만남이 그들의 삶을 파괴해갈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매일 오후 네시 정각에 앵무새처럼 문을 두드리는 옆집 남자. 그것도 절대 친절함과는 거리가 멀고, 마치 자신이 손님이 아니라 집의 주인인 것처럼 행동하는 그를 어떻게 하면 떨쳐낼 수 있을것인가라는 새로운 문제에 이들 부부는 마주하게 된다. 집에 찾아와 행패를 부리는 것도 아닌데, 집에 들어오면 마치 자기 집에 온 듯 쇼파에 앉고 차나 커피를 내오기를 기다리는 그의 행동은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다.

책은, 우선 교수라는 직업이 주는 현학적이면서도 도덕적인 이미지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하고 맞서면서 어떻게 그 이미지들이 산산히 조각나기 시작하는지를 보여준다. 쉬고 싶고 자신만의 공간을 누군가로부터 침해받기 싫은 이 보편적 감정이 그가 교수라는 직업으로 인해서 누군가에게 실례되는 일을 해보지 못했던 과거의 경험들로 인해 부딪치기 시작한다. 그가 찾아오는 걸 거절해도 되겠는지, 무례한 이 옆집 남자에게 어떻게 하면 예의에 어긋나지 않으면서도 자신들이 원하는 오후 네시의 자유를 얻을 수 있을지를 심각하게 고민하지만 파편화되어가는 자신들의 감정들만 발견될 뿐이다.
개인적으로는 현학과 이론이 실제와 감정에서 격렬하게 부딪치는 과정을 대단히 유머러스하면서도 조금은 공포스러운 소재를 통해 그려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특히 책의 중반부에 노교수를 매우 따르는 제자가 집을 찾아오는데 그에게 보여지는 이런 상황을 신경써하는 모습은 이런 지점을 노골화시켜내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거기에 책은 인간에 대한 탐구가 들어있는 소설이라는 느낌을 전해 받는다. 책은 후반부로 갈수록 자신의 감정과 (옆집 남자를 없애버리고 싶은) 욕망을 절제할 수 없는, 그리고 그 욕망을 합리화시켜가는 주인공 에밀의 모습에 치중되는데, 그런 그를 보면서 자신의 실체와 만들어가려는 자신의 간극을 느끼게 된다.
인간에게 변화와 성찰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그래서 학습하고, 관계에서 얻는 깨달음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을 많은 사람들이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자기 안에 내재되어 있는 속물적 감정,혹은 그런 실체들을 마주보기 위한 노력은 쉽게 되질 않는다. 고도의 학습과정을 거치게 되는 현대의 많은 이들에게 그런 실체는 쉽게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후 네시에 자신의 집을 침입하는 이웃남자라는 정말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대단히 공포스러운 이 상황은 인생과 삶에 대한 달관의 시기가 찾아왔을 법한 노교수에게는 거의 처음 맞이하게 되는 극한의 상황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결국 에밀은 자신의 감정과 욕망의 나침반대로 행하게 되고, 그에 오히려 쾌감을 느끼게 된다. 이제까지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쾌감을...

또한 책은 노교수 에밀의 개인의 측면에서 바라볼 수도 있지만 에밀과 그의 부인 쥘리에트 사이의 관계를 통한 점도 눈에 띤다. 에밀과 쥘리에트는 거의 일심동체라 다름없을 정도로 서로를 잘 이해하고 있고, 서로를 위해 정성을 다한다. 헌데, 베르나르댕이 찾아오면서부터 정확히는 베르나르댕의 비대한 부인 베르나르트를 알게 되면서부터 둘의 관계는 조금씩 벌어지게 된다.
마치 실재하는 '나'와 만들어가고 싶은 이미지 속의 '나'가 그 간극이 벌어지는 것처럼 거의 한 몸과 같았던 둘의 관계는 하나가 아닌 둘이 되어가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표면적인 둘의 관계가 악화되었다는 것은 아니고, 각자의 삶, 현실 속에서 추구하는 점이 점점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오히려 그 때부터 베르나르트에게 연민을 느끼는 쥘리에트는 에밀보다는 베르나르트쪽에 가깝다고 하는 게 옳을 것이다. 이렇게 미묘하면서도 벌어지는 간극은 사실 원래부터 하나가 아닌 둘이었기 때문에 내재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외부로부터의 별 것 아닌 것 같은 이 침략으로 인해 자신이 무너져가는 공포는 꽤 두려운 게 사실이다. 관계라는 것이 소통을 통해 자신의 발전과 행복을 만들어갈 수 있기도 하지만, 이런 공포도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책은 그 공포가 사실 별 거 아니라는 듯 대하는 것 같기도 하고, 독자에게 당신이라면? 하고 묻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블랙코미디 같은 이런 황당한 사건을 통해 인간 내면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해보이는 소재같지만 (실제로 자장가를 들려주는 듯한 시작부분이라는 평이 있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매우 흥미진진한 전개였다고 생각되고, 심리와 그 속에 내재된 점을 드러내놓고 펼쳐나가는 점이 이 책의 매력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신고
|  1  |  ···  |  30  |  31  |  32  |  33  |  34  |  35  |  36  |  37  |  38  |  ···  |  380  |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