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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 토리노 [Gran Torino]








'수'는 인종도 다르고, 나이차도 많지만 월트에겐 거의 유일한 친구이다.






사진출처 : Daum 영화정보





그랜 토리노 [Gran Torino]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
출연 클린트 이스트우드, 비 뱅, 아니 허, 크리스토퍼 칼리 등
2008. 미국.
@ CGV




개봉당일 영화를 보기란 영화를 자주 보는 나로서도 쉽지 않은 일이다.
우선 시간이 허락하지 않을 때가 많고, 보고 싶은 영화가 밀려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시간이 있어도 밀린 영화를 선택하게 된다.
그런데 시간이 허락된 날 자연스럽게 찾은 영화는 바로 <그랜 토리노>였다.
이유는 단 하나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 그의 출연작이기 때문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좋아한다고 말하기에는 껄끄러운 면이 없지 않다.
왜냐하면 그는 유명한 미국 공화당 지지자이며, 스스로를 보수주의자라고 자칭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그런 행보와 '보수'라는 가치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그를 좋아한다고 말하기에는 무언가 벽이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좋아한다.
적어도 그의 영화는 진보냐 보수냐의 이분법적인 잣대가 등장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누구보다 '인간'에 대한 애정이 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그의 영화의 상징성을 분석해보면 그의 보수적 성향이 드러나기도 하겠지만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그렇게 분석적으로 보지 않을 뿐 아니라, 나 또한 그 중 한명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보수적 성향과 영화에서 보여주는 모습에서의 차이에 고개를 갸웃거린 경험을 하게 되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한 영화기자가 '그랜 토리노'를 보고 나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유언을 남기는 것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고
언급한 기사가 잊혀지지 않으며, 영화를 보고 난 후 그 말에 공감하게 된다.
영화는 첫 시작부터 심상치 않다.
월트 코왈스키는 손녀의 배꼽티에 얼굴이 굳어지며, 나이어린 신부(priest)의 설교를 어설프다고 생각하는
고지식하고, 보수적인 인물이다.
그리고 그런 월트 코왈스키는 겉으로 보기에 매우 인종주의적으로 보이며, 한국전쟁에 미국군으로 참전했던 인물이다.
여기서 인종문제와 한국전쟁문제를 꺼냈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로 생각된다.
스스로를 보수라고 자칭하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지만 그래도 그는 적어도 자신의 생각은 굽히지 않는 인물이다.
그렇게 봤을 때 현재 미국이 가지고 있는 두 가지 문제에 대한 그의 견해를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꺼냈다는 생각은 쉽게 해볼 수 있다.
인종문제의 경우 끼리끼리를 중시하는 대부분의 미국 보수주의자들의 행동에 질타를 가하고 싶었던 것일테고
전쟁으로 먹고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미국의 전쟁참여 혹은 발발에 대한 개입은
스스로 용서하지 못하는 '월트 코왈스키'라는 인물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영화의 서사는 단순하다. (이 부분은 스포일러 있음)
모든 미국인이 떠난 한적한 교외에 유일한 미국인인 '월트 코왈스키'라는 대단히 보수적인 인물이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를 유일하게 이해해주고, 그가 유일하게 사랑했던 부인이 죽고 나서 그는 혼자일 수 밖에 없다.
자식들과의 관계도 원만하지 못하고, 특별히 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도 이발사 아저씨 정도이다.
그런데 그의 옆집에 베트남 전에 미국의 편에서 싸웠던 몽족인 '타오'와 '수'가 이사를 왔다.
타오는 같은 몽족의 아이들로부터 괴롭힘을 받고 있는 아이였고, 수는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는 성실한 아이다.
이들과의 첫 만남이 장총을 들이대야 하는 상황일 정도로 코왈스키는 이들을 배척했다.
하지만 타오와 수에게 각각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서 코왈스키는 그 상황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고 그런 코왈스키의 행동은
서로의 멀고 먼 간극을 좁히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타오와는 아버지와 아들, 수와는 친구처럼 지내게 된다.
그리고 조금씩 코왈스키는 변했다. 아니 변했다기 보다 그의 내재된 좋은 감성들이 표현이 되기 시작했다고 보는 것이 더 맞다.
그런데 타오와 수에게 괴롭힘을 가하는 이들은 코왈스키의 협박에도 괴롭힘을 멈추지 않고
오히려 코왈스키에게 당한 것을 되갚기라도 하듯 복수를 하게 된다.
그리고 피는 피를 부르게 되는 것처럼 코왈스키는 그에 대한 복수를 하러 떠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죽음으로 타오와 수를 구해준다.
코왈스키의 마지막 라이터를 꺼내는 장면은 영화에서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다.
그 하나 만으로도 영화는 감동을 주고도 남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면서 인상적인 장면 혹은 지점들이 있다.
월트는 한국전쟁에 참전해서 13명의 소년병을 죽인 것에 대해 참회하라는 권유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참회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는 그 문제를 참회하는 문제가 아닌 평생을 지고 가야 할 스스로의 짐이라고 여기고 있다.
어쩔 수 없어서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알아서 했다고 고백하는 장면은 전쟁의 시작부터 끝까지
누군가는 그 일을 만들어내고 있었을 것이며, 그걸 용서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여기는 듯 하다.
월트를 설득하는 신부가 월트보다 더했던 사람들도 참회하고 구원받았다고 하는 말에 비아냥 거리는 월트의 모습은
어찌 그것을 용서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하고 있는 듯 하다.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 하는 고해성사에서도 그 문제를 꺼내지 않은 것은 아마도 스스로가 용서되지 않는 문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이 자신을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을 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 아닐까...
이 부분을 보면서 영화 <밀양>에서
피해를 받은 나는 아직 용서할 준비가 안되어 있는데, 하나님에게 용서를 빌었다며 전도연이 절규하는 장면이 오버랩된다.

영화속에는 한국전쟁에서 받은 훈장을 타오에게 선물하고, 타오는 다시 그 훈장을 가슴에 달고 월트 앞에 나타나는 모습처럼
미국식 가치가 드러나는 장면들도 더러 있다.
하지만 그런 장면들은 영화 전반에 깔린 반인종주의와 전쟁학살에 대한 문제의식 속에 충분히 가려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닐까 싶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으로 만들어지는 작품은 아마 더 나오겠지만
그가 출연한 작품으로는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를 <그랜 토리노>
어쩌면 마지막으로 출연할 결심을 하고, 참회와 성찰이 강한 영화를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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